자각을 넘어서

자각을 넘어서

Beyond An Awareness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오늘의 본문구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알다”라는 말은 헬라어 “에이도(eido)”를 번역한 것으로, 그 의미는 ‘알아차리다, 관찰하다, 자각하다’입니다. 따라서 ‘안다’는 것은 자각하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영어에서는 이것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알다(know)” 또는 “지식(knowledg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헬라어에는 지식에 관한 한 에이도 이외에도 다른 세 가지 주요 단어가 있습니다. 그 세 단어는 “기노스코(ginosko)”, “그노시스(gnosis)”, “에피그노시스(epignosis)”이며, 모두 의미가 다릅니다. 기노스코는 계시지식(revelation knowledge)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3:18에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말씀하는데, 이때 ‘지식에 넘치는’에서 지식은 ‘그노시스’인 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에서 ‘알고’는 ‘기노스코’입니다. 그노시스는 정신활동을 통해 얻는 과학지식입니다.

세 번째 종류의 지식이자 최고의 지식은 “에피그노시스”입니다. 이 지식은 아는 주체를 앎의 대상과 관계시키며,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지식입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선물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합시다. 그 선물이 도착해서 당신이 그것을 인지할 때를 ‘기노스코’라고 합니다. 선물의 포장을 뜯고 그것이 무엇인지 자각했을 때를 “에이도”라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그것을 관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그것과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선물을 꺼내서 관계하기 시작할 때, 다시 말해 그것을 사용하고 누릴 때, 당신은 선물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피그노시스”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당신이 그리스도인이고 영원한 생명을 지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지식이 당신의 영에서 생생한 실재 곧 당신이 지금 관계하고 살아가며 누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지식이 당신의 사고와 행동을 주관하는 실제적인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묵상이 실제로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 묵상은 당신이 말씀을 의식하도록 하며 말씀에서 아는 진리와 하나가 되게 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저는 그리스도의 몸 곧 그분의 살과 뼈의 지체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저의 모든 섬유조직과 모든 뼈와 모든 혈액세포에 역사합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계심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이 지식과 관계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요동할 수 없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 삶에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본성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참고 성경

호 4:6, 벧후 1:2-4

 

1년 성경읽기

마 18:15-35

출 10-12

 

2년 성경읽기

마 10:1-11

창 26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