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을 용모 이상으로 닮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용모 이상으로 닮았습니다
Beyond The Physical Appearance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우리가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말할 때 어떤 이들은 사람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을 때에 그분의 체구, 키, 안색, 머리카락 또는 신체 특징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는 용모를 훨씬 능가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 영광을 받은 예수님과 닮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시기 이전 예수님은 경이로운 일을 하시고 대단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청각장애가 있는 귀가 들리며, 시각장애가 있는 눈이 보며, 지체장애가 온전케 되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가 “주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그렇게 말했어도 놀라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그분의 현재 상태인 영광을 받으신 그분과 같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이다(is)”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따라서 예수님의 용모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그분의 턱수염, 안색 또는 키가 아니라 그분에게서 나오는 영광과 생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육체적인 묘사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영광으로 흡수됩니다. 오늘의 본문구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as he is)”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승리를 거두며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이신 것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축복이 있다니요!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의 몸을 입은 예수님을 이해하거나 육체와 몸을 의식하려고 애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을 의식하십시오. 용모로 자신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이해되는 분이 아니십니다(눅 24:15,16,31,35). 그러므로 이 땅의 출생지나 혈연관계로 자신을 묘사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으로서 바라보십시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요 17:22) 로마서 8:30은 말씀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요한일서 3:2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우리는 외적으로 그분을 닮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내적으로, 다시 말해 우리의 영에서 우리는 이미 그분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고백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진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그러하시듯이 나도 이 세상에서 그러합니다. 나는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어서 내 안에서 나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의식합니다. 나를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요 아버지의 의의 드러남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고백합니다.

참고 성경
요 3:13, 요일 3:2

1년 성경읽기
계 8

2년 성경읽기
요 21:1-12
대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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