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표현입니다
We’re The Expression Of The Word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기독교에서 우리는 말씀을 순종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고 말씀을 행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요 실천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삽니다. 그 실제적인 의미는 우리가 말씀의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말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입니다. 행하기 전에 말하는 것이 먼저 옵니다. 당신은 지금 말하는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아니었다면, 이제는 말하는 그대로 됩니다. 당신의 입은 당신의 인격(personality)의 표현입니다.
말이란 인간의 영이 자신을 인격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지식을 받을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육체를 입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말씀에서 진술된 대로 당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저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말씀으로 가득차고 말씀에 잠겨야 합니다. 그러면 사실 당신은 말씀의 자손이기 때문에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당신도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3:2-3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그리스도의 편지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게 바로 당신의 정체성입니다. 이는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예컨대 말씀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빌 4:6)라고 말씀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염려하지 않기로 애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이것은 당신이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염려하지 않는 것이 바로 당신의 성품과 인격의 반영이므로 그에 따라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인격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순종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실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 안에 있는 말씀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말씀이요 당신이 행하는 것도 말씀입니다. 당신의 삶은 말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고백
나는 보이지 않은 그리스도의 아이콘이요 그분의 영광의 광채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영광을 볼 때, 나는 그와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지금 예수님처럼 나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승리하고 탁월하며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참고 성경
골 3:16, 약 1:22-25

1년 성경읽기
눅 23:50-24:12, 삼하 7-8

2년 성경읽기
고전 1:22-31, 시 141-142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Be Full Of The Spirit Always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초대 교회는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기준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사람들은 성령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께서 안에 계신다는 사고방식을 지녔습니다. 그들이 사도행전 2:4의 경험을 한 후, 성경은 말씀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행 4:31)
주일에 모인 온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교회는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이것이 정상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는 우리 모두를 향해 꾸시는 하나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6:5에서 성경은 스데반을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자로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11:24은 바나바를 가리키면서 똑같이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사역이나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좌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역의 과업을 거의 포기하기 직전 상태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행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나바는 전부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신도 그런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당신에게도 성령님이 계시지만, 성경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하셔야 할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에베소서 5:18-21을 읽어보십시오). 에베소서 5:18을 확대번역(AMP)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성령]으로 계속해서 충만하고 자극을 받아라.” “계속해서(ever)”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성령으로 충만하는 것이 단 한 번의 경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움직이는 모든 순간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신의 삶은 멈출 수 없는 성공과 끊임없이 증가하는 영광의 삶이 될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든 상관없이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그 장애물은 무너질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무너뜨릴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으면 뚫고 지나갈 것입니다! 당신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불가능이나 한계는 없습니다. 당신은 천하무적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고백
나는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므로 지혜와 건전한 판단과 지식과 영광과 통치 가운데 있습니다! 내 길에는 어떤 장애물도 견딜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불가능이나 한계가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의의 일을 할 힘과 능력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참고 성경
엡 5:18-21, 행 4:31, 삼상 10:6-7(AMP)

1년 성경읽기
눅 23:26-49, 삼하 4-6

2년 성경읽기
고전 1:10-21, 시 139-140

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십시오

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십시오
Look Beyond This World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소망이 오로지 이생에서만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온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 불쌍한 자들이다.”(고전 15:19, GNB)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하는 전부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목적의 전부가 이 세상뿐이라면, 그것은 소망 없고 낭비된 삶입니다. 이 땅의 삶이 최종적인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후의 삶을 위해 훈련하기 위한 이유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하늘에 가거나 오는 시대에서 얻고 누릴 삶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사는 삶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물론이고 영적인 실재에 대한 당신의 지식과 이해와 상당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적을수록 오는 시대에서 별로 효과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권세를 주실 것이기에,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삶은 미래를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는 시대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통치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9:17에서 신실한 종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려보십시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당신에게 맡기셨던 일에 신실하였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만이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축복하시고 당신에게 여러 도시와 민족과 영토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오는 세상에서 모든 이들이 도시와 민족과 영토를 다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말씀을 알고 적용하는 당신의 지식과 이해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것들로 당신의 영을 훈련하고 훈육하여 왕국과 관련된 것에 대해 밝히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오는 세상에서 통치하는 삶을 준비하도록 민족들을 정복하고 이 세상의 환경을 다스리십시오. 할렐루야!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현세의 속임수에 주의를 뺏기지 않고 초점을 바르게 하는 중요성을 제게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의 말씀과 영에 완전히 양보합니다. 오늘 저는 오는 시대에 더 높은 책임을 지도록 말씀으로 다스리고 정복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엡 3:21, 고전 15:19(GNB)

1년 성경읽기
눅 22:66-23:25, 삼하 1-3

2년 성경읽기
고전 1:1-9, 시 137-138

하나님은 당신의 영과 관계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과 관계하십니다
He Relates With Your Spirit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이나 육신의 몸이 아니라 당신의 영과 관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당신의 영에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영은 하나님께서 언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정확히 압니다. 당신의 영은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당신의 영에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영이 그분의 빛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영은 주의 촛불이라. 뱃속에 있는 모든 깊은 부분을 살피느니라.”(잠 20:27, 한글킹제임스)
당신의 영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영어 불어 포르투갈어 등 지상의 언어로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당신이 이해하는 어떤 언어로든 영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소통의 대가이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 이유는 그 동안 당신이 영으로 듣지 않았거나 그분께 응답하도록 자신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하나이므로, 그분은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전부는 항상 그분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수록 당신은 그분의 음성을 잘 알게 되므로, 그분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께 응답할 수 있습니다.
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과 관계하시므로, 그분과 환경에 대한 당신의 반응 역시 당신의 영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 영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고 환경에 반응하며 말씀대로 문제를 해석하고 다루어야 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음성을 들고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행합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영광으로 이끄실 때 제 영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도록 아버지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힘을 얻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시 50:1, 시 62:11

1년 성경읽기
눅 22:39-65, 삼상 29-31

2년 성경읽기
롬 16:12-27, 시 135-136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The Heavens Are Already Open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열린 하늘의 개념을 믿고는 항상 하나님께 하늘을 열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다음의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늘이 언제 닫혔던가?’ 열린 하늘이라는 개념은 말라기 3:10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말라기 3:10은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늘의 창”이나 “하늘의 수문”이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창을 의미한다면 그 창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창세기 28:12에서 야곱에 대해 읽은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고 말씀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창 28:12)
야곱의 사다리는 바로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비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 그분이 바로 야곱의 사다리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는 하늘이 이미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하늘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거나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가족의 성원이요 이 땅에 있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이로 인하여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분에게서 하늘이나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이 이름을 부여받았느니라.”(엡 3:14-15, 한글킹제임스) 이는 하나의 대가족으로, 당신은 지금 그 가족에 속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제 시민권이 질병과 약함과 문제와 가난이 전혀 없는 하늘에 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권능과 통치 그리고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이름을 훨씬 능가한 하늘의 영역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골 3:1-2, 엡 2:5-6

1년 성경읽기
눅 22:1-38, 삼상 26-28

2년 성경읽기
롬 16:1-11, 시 133-134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터치가 아닙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터치가 아닙니다
What You Need Is Not A Touch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불식간에 구약의 계시의 기초 위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 밖에서 계속 걷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신약에서 오늘날 교회에서 누군가 가르치거나 실천하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삶에서 변화를 갈망하여 “나는 하나님의 터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터치해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진술은 멋지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피조물의 실재를 전달하지도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술은 그런 사람들이 삶에서 마땅히 누려야 했음에도 이따금씩만 영광을 경험한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성령님이 당신 안에 충만하게 사시는데 그분의 “터치”를 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구절은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당신이 터치해달라고 구하는 대상은 당신의 영과 섞여있습니다. 당신은 그분과 하나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터치가 아니라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베소서 5:18-21에서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법을 알려줍니다(에베소서 5:18-21 전체를 공부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안에 계시며, 그분은 전부이십니다. 당신에게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으로 충만합니다. 성경은 당신이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온전하다고 말씀합니다(골 2:10).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계시입니다. 이미 당신 안에 거하시는 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터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분의 손이 당신의 손에 있으며, 그분의 다리는 당신의 다리에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눈을 통해 보십니다. 당신은 그분의 살아있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작은 것에 집중하여 하나님께서 극대화하신 것을 작게 만들지 마십시오.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터치를 구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은 당신 곁에서 때때로 당신을 터치하도록 보냄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안에 영원히 사십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초월적인 생명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아버지의 말씀으로 보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므로, 제 안에 사시는 성령님께서 제 안에서 그리고 저를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롬 8:6, 롬 12:2

1년 성경읽기
눅 21:5-38, 삼상 23-25

2년 성경읽기
롬 15:20-33, 시 131-132

이해가 중요합니다

이해가 중요합니다
Understanding Is Important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이해)을 얻을지니라”(잠 4:7)

지혜가 중요한 만큼 명철(이해) 역시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이해)을 얻을지니라”(잠 4:7)고 말씀합니다. 지혜의 영에 관한 아름다운 점은 그분이 혼자 오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8:14에서 지혜가 말합니다. “내게는 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지혜는 이해를 전이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대답이 필요한 의문사항이 있지만, 지혜의 영은 당신에게 신비와 비밀에 대한 통찰을 주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이해의 눈에 빛으로 채우십니다.
주 예수님은 씨를 뿌리러 밖으로 나간 씨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를 사람들에게 하심으로써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씨를 뿌렸을 때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길가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자들을 나타낸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메시지가 실제로 그들의 심령으로 들어갔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사탄이 즉시로 그것을 그들의 심령에서 훔쳐가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19).
오늘날 사람들은 적절한 이해 없이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합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경배찬양을 할 때 많은 이들이 함께 경배하고 있는 언어나 메시지를 이해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어떤 경배찬양은 실제로는 경배찬양이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마음속으로 주님을 경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노래를 부릅니다. 예컨대 “우리는 아버지의 상속자(We’re heirs of the Father)”라고 노래하는 것은 일종의 확언입니다. 이는 당신에게 복이긴 하지만, 경배는 아닙니다.
경배찬양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관한 노래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으니(I Surrender All)”와 같은 노래는 경배찬양도 새로운 피조물을 위한 노래도 아니고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고 있는 죄인을 위한 노래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당신 인생의 주님으로 선포했을 때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다시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해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아십니까? 이해 없이는 사역과 성공과 번영은 아주 제한적일 것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 곧 신성한 지혜 안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이 신성한 지혜는 성령님과 말씀의 사역을 통해 당신에게 옵니다. 전적으로 자신을 성령님께 양보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항상 모든 지혜와 영적인 이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지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고백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하게 거하므로 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을 알고 그 가운데 걷습니다. 나는 모든 지혜와 영적인 이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참고 성경
사 11:2, 엡 1:17-18, 눅 8:10

1년 성경읽기
눅 20:20-21:4, 삼상 20-22

2년 성경읽기
롬 15:10-19, 시 129-130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부류에 속합니다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부류에 속합니다
We’re In The “Much Fruit” Class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주 예수님은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같은 줄기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포도나무에 있는 그 생명이 가지를 통해서 흐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열매를 맺고 생산적인 삶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열매를 맺는 것에 관심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지속적으로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요 15:16)
명심하십시오. 주님은 포도나무 가운데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가지는 제거되지만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정화되고 가지치기를 겪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2). 당신이 계속 열매를 맺도록 그분은 당신 안에서 계속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부류에 속합니다. 당신이 더 적은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많은 열매를 맺도록 당신을 택하시고 임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5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맺도록 당신을 성별하시고 기름 부으셨으며 설정하셨습니다. 이는 당신의 삶에 실패할 여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번영하고 당신이 관여하는 모든 일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절마다 생산적입니다. 시편 1:3은 이를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당신은 강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당신의 잎사귀는 시들지 않으며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기도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계시며 제가 그분 안에 있으므로 저는 열매를 맺고 생산적입니다. 우리는 같은 줄기에 속합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번영하며, 저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진보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요 14:12, 고전 1:9, 고전 6:17

1년 성경읽기
눅 20:1-19, 삼상 18-19

2년 성경읽기
롬 15:1-9, 시 127-12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권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권세
Our Authority In Christ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권세는 아주 포괄적이고 무제한적이며 우리의 개인적인 의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는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신 결과이자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입니다. 여기에는 실로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1-3에서 주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주님은 권세에 대한 심오한 것을 설명하시고자 위의 마태복음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모세를 대표하는데, 모세는 율법을 대표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실제로 바르게 살고 행하지 않았지만 모세의 권세를 지니고 있기에 율법 아래서는 그들에게 복종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왕국의 법입니다.
자,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위선과 종교성을 비롯한 그들의 행동을 칭찬하지 않으셨지만 모세로 인해 그들의 권세를 인정하시고 사람들이 그 권세를 존중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마귀와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당신의 권세는 당신의 능력이나 인간적인 완전함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마태복음 17:5을 보면 하늘로부터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을 때 자연에 속한 모든 존재를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창조물 곧 사탄과 귀신들과 천사들과 모든 생명체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이 전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라는, 더 나아가 당신이 그분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듣고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사탄과 그의 모든 귀신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언제 어느 곳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들을 쫓아낼 능력이 있으며 당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다시 말해 당신이 그분의 통치 안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당신은 그분과 함께 영광과 능력과 권세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 제 영에 아버지의 말씀이 활성화시켜준 담대함과 권세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제가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있으므로 모든 창조세계가 제게 응답합니다. 온 세상은 저의 것입니다. 오늘 그리고 항상 저는 승리하며 살며 그리스도의 능력과 통치를 나타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눅 8:24-25, 엡 2:4-6, 요일 4:17

1년 성경읽기
눅 19:28-48, 삼상 16-17

2년 성경읽기
롬 14:12-23, 시 125-126

선한 일은 계속 됩니다

선한 일은 계속 됩니다
The Good Work Continues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당신 안에 사시도록 성령님을 받아들였을 때, 성령님은 당신 안에서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안에서 한쪽 구석에 조용히 머물러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선한 일에 열정을 갖는 특별한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정결하게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분 자신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믿음의 일이요, 성령의 능력으로 당신을 통해 이루어진 의의 일입니다. 선한 일에 대한 당신의 열정과 열의는 당신의 삶에서 성령님이 하신 일의 결과입니다. 그분은 선한 일을 하도록 당신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시는 장본인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정하신(미리 계획하신) 선한 일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재창조된[새롭게 태어난], 하나님께서 [친히] 손수 만드신 작품[그분의 걸작품]이다.”(엡 2:10, AMP)
이제 바울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한 일이 계속 된다는 의미입니다. 당신 안에 더 크신 분이 일하시기 때문에 당신은 하는 모든 일에서 항상 효과적이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는 지금 매우 잘 하고 있음을 알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요? 저는 그렇게 잘 해내지 못할지 몰라요.”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안심하십시오! 주님은 당신 안에서 그분이 하시는 일이 언제 끝날지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때는 다음 주도 2년 내도 아닙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다시 말해 교회가 휴거될 때까지 계속 됩니다. 그러므로 아시다시피, 당신은 계속 진보할 것이고 항상 이길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제 안에 살면서 일하셔서 저를 아버지의 선하신 즐거움에 속한 것을 원하며 하게 하시는 귀하신 성령님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제 삶에는 실패나 패배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저는 항상 승리하며, 꾸준히 열매를 맺고 생산적이어서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
요 14:16-17, 엡 2:10, 요일 4:4

1년 성경읽기
눅 19:1-27, 삼상 14-15

2년 성경읽기
롬 14:1-11, 시 123-124